화면 중, 판별 가능하고 명확하게 다른 색과 구분되어 있는 만큼, 색의 종류가 존재하고 있다. 노랑, 검정, 파랑, 빨강을 판별할 수 있다면, 4종의 색이 화면상에 존재하고 있다. 복수의 색을 식별할 수 있는 한, 그것을 하나의 말로 표현하는 개념은 창조할 수 없고, 이미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색이 아닌 색 이외의 무엇인가이지만, 여전히 거기에 색이 존재하고 있다. 색은 주체성을 잃고, 다른 주체에 스스로를 주고 예속한다. 신록이 아름다운 것은 신록이 아름답기 때문이며, 녹색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신록의 녹색이 아름답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능한 한 동색의 녹색을 캔버스에 한 필 칠해 보았는데, 그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실의 천재가 신록의 아름다움을 캔버스 위에 훌륭하게 재현했다고 하자. 아름다운 것은 역시 신록이며, 녹색이 아니다. 색이 아무것도 예속되지 않고 그것만으로 아름답다면 색의 표본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지게 되지만, 그런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아름다운 그 물체에서 색을 취하면 나머지는 선과 면이다. 그것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색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색이 없으면 아름답지 않다.